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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2015.08.08 09:54

오작교 조회 수:15863

  요한 것은 실제로 음악을 듣는 일입니다. 지난 1년간, 그러니까 전작이었던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한 이후, 전국 곳곳의 강연장에서 내내 강조했던 말이 그것이었습니다. 강연장에는 적게는 20 ~ 30, 많을 때는 약 400명의 청중이 모이곤 했지요. 연령대는 주로 30~40대였습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그밖에도 어린이와 중고등학생, 또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분들이 찾아와 클래식 음악에 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엄마와 함께 온 초등학교 2학년 아이는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며 수줍게 웃었고, 어느 지방 도시에서는 머리가 하얗게 센 70대 의사 분들이 단체로 강연장을 찾아와 귀를 기울였습니다.

 

  모든 분들이 제 입에서 무슨 말이 흘러나올지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지요. 그런데 저는 노상 찬물부터 끼얹었습니다. “음악을 듣고 싶은가요?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왔나요?” 그러면 대부분 !”라고 큰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호응해주시는 분들에게 전 개인적으로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래야 저도 힘이 나니까요. 하지만 거기서 질문을 끝내면 안 됩니다. 한발 더 나아가야 합니다. 저는 무선마이크를 손에 든 채 청중 속으로 들어가서 정말 듣고 싶은가요? 간절하게?”라고 다시 묻습니다. 한 분 한 분과 눈을 맞추면서 그렇게 묻습니다. 그러면 대답 소리가 갑자기 작아지지요. 그 질문과 맞닥뜨리는 순간부터 많은 분들이 헛갈리기 시작합니다. ‘내가 정말 음악을 듣고 실은 걸까?’ ‘내 시간과 돈을 쓰면서, 능동적으로 음악을 듣고자 하는 마음이 나한테 정말 있는 걸까?’

 

  렇습니다. 많은 분들이 클래식 음악에 호기심을 느끼지만 실제 삶 속에서 음악을 벗하며 지내는 분들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그중의 하나로 클래식 음악을 어려운 음악혹은 특별한 사람들이나 즐기는 고급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보니 음악을 학습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고, 스스로를 멋지게 드러낼 수 있는 고급 교양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한데 정말 그럴까요? 클래식 음악은 그렇게 머리 싸매고 공부해야할 만큼 어려운 것이고, 나 자신을 유사(類似) 상류층으로 만들어줄 명품 브랜드일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클래식 음악이 왕궁과 귀족의 성()에서 벗어난 것은 18세기 후반부터입니다. 음악사적으로 보자면 하이든 후기와 모차르트의 시대였지요. 그때부터 클래식은 부르주아의 음악, 다시 말해 시민계급의 여흥으로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시민들이 콘서트홀 객석의 다수를 차지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악보 출판과 악기의 개량·보급이 속속 이어지면서 보통 사람들이 음악을 직접 연주하는 것으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이처럼 클래식 음악은 사회 체제의 변동과 함께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예술로 변화합니다. 다시 말해 어려운 음악도 아니고 특별한 사람들만 즐기는 고급한 음악도 아닙니다. 18세기 후반부터 따지자면 세월이 벌써 200년이 넘게 흘렀습니다.

 

  그래도 아직도 뭔가 찜찜하지요? 뭔 알인지는 알겠는데, 그래도 클래식 음악은 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자꾸 느껴지지요? 그렇습니다. ‘그분은 여전히,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입니다. 왜 그럴까요? 클래식 음악이 자꾸 멀게 느껴지는 이유! 그것은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우리가 너무 바쁘게, 정신없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알려져 있듯이 한국인의 노동 시간은 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긴 축에 속합니다. 그렇게 바쁘게 일해도 생계가 빠듯한 게 현실입니다. 과거보다 많이 버는 것 같지만 실제로 손에 쥐어지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게다가 일 외에도 해야 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술도 먹어야 하고요, 스마트폰으로 SNS도 해야 하고, 주말에는 가족과 외식을 하거나 등산을 가거나 골프도 쳐야 합니다. 그밖에도 할 것들이 주변에 널렸습니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 지 정신이 없을 정도입니다. 조용히 혼자 있을 시간이 거의 없는데다가, 심지어 현대인들은 그 혼자 있음을 두려워하기까지 합니다.

 

  눈치 채셨겠지요? 그렇습니다. 음악을 들으려면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삶의 여유, 그로부터 비롯하는 마음의 빈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노상 쫓기는 나날, 이런 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한 나날이 이어진다면 음악이 들어와 숨 쉴 수 있는 공간은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클래식 음악은 대중음악에 비해 음악의 길이가 길고 구조도 복잡하지요. 적으면 30, 길게는 3시간에 달하는 음악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니 클래식 음악을 즐기려면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한데 실제 현실 속에서 그것이 녹록치 않습니다. 그래서 음악이 자꾸만 멀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게다가 또 하나의 아이러니한 질곡이 있습니다. 이른바 풍요로움이라고 불리는 매체의 발달이 바로 그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이제 클래식 음악은 도처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FM라디오는 이미 고전적인 매체이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에도 언제나 음악이 들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손가락 하나만 까딱 움직이면 언제라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편리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한데 이렇게 풍요로워 보이는 현실이 음악에 대한 향수(享受)를 확장시켰을까요?

 

글쎄요, 제가 보기엔 아닌 것 같습니다. 그 풍요로움은 우리의 삶을 한편으로는 매우 단순하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주 정신없게 만들어 놓았을지언정 음악에서 느끼는 감동의 폭과 깊이를 키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궁핍함이야말로 간절함의 근거라고 믿습니다. 한 곡의 음악을 듣기 위해서 돈을 아끼고, 그래서 몇 장의 음반을 직접 사거나 큰 맘 먹고 콘서트홀을 찾아가는 것, 그런 과정을 통해 음악의 감동은 커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언젠가 강연장에서 만난 한 여성분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저는 주로 인터넷으로 음악을 듣는데 곡의 제목을 기억하진 않아요. 그냥 스쳐가는 풍경처럼 듣는 거죠. 그렇게 들어도 괜찮은 거죠?” 그때 제가 뭐라고 답했을까요? 저는 구분한테 안 됩니다!” 하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렇게 듣던 음악 중에 가슴을 흔드는 곡이 하나도 없었나요? 만약 그렇게 감동으로 밀려온 곡이 있었다면 당연히 그 곡의 이름을 알고 싶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게 사랑의 시작이거든요. 질문하신 분과 그 음악 사이에서 사랑이 싹트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동안 제목이 궁금했던 곡이 하나도 없었다면, 음악을 향해 가슴을 열고 다가가지 않은 거요. 그냥 인터넷으로 틀어 놓고 있기만 했던 겁니다.”

 

  물론 배경음악으로 듣는 음악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의 허다한 음악 중에 일부일 뿐이지요. 보다 근본적으로 클래식 음악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가슴을 열고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그리고 가끔 메모를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음반을 직접 사거나 설레는 마음으로 연주회장을 찾기도 해야 합니다. 음악 듣기는 그렇게 능동적인 행위입니다. 물론 그것은 머리로 하는공부하는 다릅니다. 가슴으로 느끼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저는 강연장에 오신 분들에게 정말 간절하게 듣고 싶냐?”고 물었던 것이지요.

 

  간절한 마음으로 클래식 음악의 문을 열고 이제 막 한 발을 내디디려는 분들, 혹은 이미 음악의 재미와 감동에 어느 정도 빠져드신 분들, 저는 지난 1년간 바로 그런 분들과 눈을 맞추면 음악 이야기를 나눴고 이 책은 바로 그 분들을 염두에 두고 쓴 지상강의이자 음악편지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조금 욕심을 내고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벗하려는 사람이라면 결코 빠뜨릴 수 없는 필수적인 걸자’ 101곡을 고새하려는 것이 저의 계획입니다.

 

  왜 하필 101곡이냐구요? 그냥 그렇게 정했습니다. 별 뜻은 없습니다. 어쨌든 모두 세 권의 책에 101곡에 대한 이야기를 차곡차곡 담아낼 생각입니다. 이 책이 바로 그 첫 번째 순서입니다. 바흐와 비발디, 헨델을 비롯해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에 이르기까지 모두 34곡을 골랐습니다. 음악사적으로 보자면 바로크 후기(後期)에서부터 낭만주의 초입까지라고 할 수 있겠지요. 물론 그 34곡으로 당대 음악을 포괄할 수 있을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시기의 가장 대표적인 음악가들, 또 그들의 음악 가운데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곡들을 추려서 최대한 쉽고 다감한 문체로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음악가 개인의 기질과 내면, 당대의 그가 처해 있던 상황과 사회적 배경 등을 두루 살피면서 한 곡의 음악에 접근해가려고 했지요. 그리고 그 음악을 실제로 들을 때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고 감사해야 하는지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올해 하반기에 출간될 두 번째 책은 슈베르트로 문을 열어 낭만주의 시대를 수놓은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볼 생각입니다. 아마 브람스까지 될 것 같습니다. 내년에 펴낼 세 번째 책은 세기말의 말러에서 시작해 20세기 음악으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제 개인적인 취향은 가급적 배제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흔히 듣는 곡들을 선별하려고 했습니다. 물론 음악적 텍스트 자체에 집중하고 있는 전문서적은 아닙니다. 그럴 만한 능력도 없거니와, 그런 방식과 태도는 음악을 향유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다면 이 글을 읽을 당신과 눈높이를 맞추면서, 현학과 허식의 함정을 벗어나 음악을 함께 즐길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음악은 실제로 듣는 것입니다. 머리로 이해하기보다는 가슴으로, 나아가서 온몸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꾸 듣다 보면 어느새 음악이 내 몸속에 저장되기 시작합니다. 그때 비로소 음악은 내 것이 됩니다. 그러니 책에서 소개하는 34곡을 반복해 들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한두 번 듣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지속적으로 반복해 들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곡의 선율과 화성이 저절로 암기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음악의 전체적 구조가 서서히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부디 많이 들으십시오. 음악 듣기는 그 어떤 장르의 예술을 만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지구력을 필요로 합니다. 물론 한 곡의 음악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시간을 투자하는 것과 동시에, 약간의 비용도 필요한 게 사실입니다.

 

  가능하다면 이 책을 읽은 당신이 매 편의 글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3장의 암반을 사기 위해 지갑을 열었으면 합니다. 땀 흘려 일한 대가를 음악 듣기에 조금만 투자하기를 감히 권합니다. 한 달에 두어 장 정도의 음반을 직접 사고, 그것을 애지중지 아껴가며 듣는 것이야말로 음악이라는 즐거움과 동행하는 길입니다. 그 행위 자체가 이미 음악(Musicking)’입니다.

 

  그 동행에 누가 되지 않도록 3종의 음반을 최대한 엄선하려고 애썼습니다. 명반으로 정평이 난 기존 음반을 물론이거니와, 2000년대 이후에 녹음된 새로운 음반들 중에서도 놓치기 아까운 것들을 엄밀한 마음으로 살폈습니다. 물론 혼자 마음대로 선정한 것은 아닙니다. 여러 나라의 주요한 음반 전문지를 참조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주변 비평가들과 음반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을 두루 경청했습니다. 적어도 이 책을 읽을 당신에게는 실제로 주머니를 열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참으로 힘겨운 시대입니다. 한편에서는 착취가, 또 다른 한편에서는 가짜 위로가 넘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는 한 장의 음반을 고를 때마다 스스로 경건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34곡의 음악과 100여 장의 음반을 당신의 머리맡으로 띄워 보냅니다. 음악이 당신의 삶에 한 줄기 위안과 잠시나마의 편안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thanks to···

 

20145

문학수

글 출처 : 더 클래식(The Classic) 하나(문학수, 돌베개)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대학 시절부터 클래식 음반을 쫓아다닌 음악 애호가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 관현악과 피아노 독주다. 오랫동안 경향신문에 음악 비평을 써 왔으며, 채널예스에 음악 칼럼 ‘내 인생의 클래식 101’, 서울시향의 기관지 SPO에 ‘20세기 음악 산책’ 등을 연재하고 있다.

경향신문사에서 문화부장을 두 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 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저서에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돌베개, 2013), <더 클래식: 바흐에서 베토벤까지>(돌베개, 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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